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Joker)’는 단순한 코믹스 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든 자화상을 담은 철학적 드라마입니다. 고담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영화는 가난과 무관심,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사회에서 한 남자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탐구합니다.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원래부터 악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웃음을 선사하는 광대였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의 웃음을 ‘비정상’이라 부르며, 그의 인간성을 짓밟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이 만든 괴물, 조커로 다시 태어나며, 영화는 그 과정을 예술적으로 기록합니다. 2025년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가 살던 세계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커’는 여전히 불편하고, 여전히 필요한 영화입니다.
한 인간이 미쳐가는 과정, 그 시작은 ‘고독’이었다
‘조커’의 진정한 공포는 피가 아닌 고독에서 시작됩니다. 아서 플렉은 고담시의 하층민으로, 광대 일을 하며 노모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하루는 잔혹합니다. 그는 조롱당하고, 구타당하고, 심지어 정부가 지원하던 정신과 상담 프로그램마저 예산 삭감으로 중단됩니다. 그의 삶을 유지해주던 마지막 사회적 끈마저 끊어진 순간, 그는 더 이상 누구의 ‘존재’로도 불리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웃음은 병으로 인한 증상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웃음을 사회가 강요한 가면으로도 보여줍니다. 그는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했고, 무너져도 괜찮은 척해야 했습니다. 그의 웃음은 결국 ‘슬픔의 언어’로 변하고, 그의 몸짓은 점점 현실과 분리되며,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갑니다.
토드 필립스는 이러한 아서의 붕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거친 카메라 워크와 어두운 색채, 그리고 긴 침묵을 사용합니다. 특히 엘리베이터 장면과 계단에서의 춤은 아서의 정신세계가 붕괴되는 동시에 해방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과 단절된 고독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회가 만든 괴물, ‘조커’라는 이름의 탄생
아서가 총을 쥐는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갑니다. 지하철에서 세 명의 남성을 살해하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의 폭발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억압된 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그의 총성은 개인의 절규이자, 사회를 향한 선언입니다.
그 사건 이후, 고담시는 ‘조커 가면’을 쓴 시위대로 가득 차게 됩니다. 폭력과 혼란이 도시를 뒤덮고, 조커는 대중의 ‘분노의 상징’이 됩니다. 사회는 조커를 악마로 단죄하지만, 영화는 그를 ‘악’이라기보다 ‘결과’로 바라봅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냉대, 빈곤층에 대한 구조적 배제, 언론의 왜곡된 보도와 대중의 냉소까지, 이 모든 사회적 요인이 아서를 조커로 만들어냅니다.
영화 후반, 그가 머레이 쇼에서 “당신들은 나 같은 사람을 만든 거예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폭로입니다. 그의 대사는 불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찌릅니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며, 현대인의 내면에 자리한 분노 그 자체입니다.
2025년에 다시 본 조커, 현대 사회의 거울
2025년 현재, 우리는 조커가 살던 고담과 다르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더 고립되었고, 소통은 늘었지만 공감은 줄었습니다. SNS 속 ‘좋아요’는 많지만 진심 어린 대화는 사라졌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조커’처럼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웃고 있습니다.
‘조커’는 단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대인의 초상입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관계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감이 분노로, 분노가 냉소로, 냉소가 파괴로 변해갑니다. 그 파괴는 반드시 폭력이 아니라, 때로는 무기력, 자기혐오, 혹은 사회적 단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여전히 전율을 줍니다. 그의 눈빛은 미친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자의 눈빛입니다. 그는 세상을 너무 깊이 느끼기 때문에, 결국 그 무게에 짓눌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의 연기는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복잡하고, 사회가 얼마나 무심한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의 이야기 속에 철저히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심었습니다. 그것은 “악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메시지입니다.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한 인간은 영웅이 될 수도, 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커는 결국 우리 사회의 결과물이자, 무너진 윤리와 무감각의 시대가 낳은 슬픈 산물입니다.
‘조커’는 단순한 악당의 탄생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감정적 붕괴에 대한 영화적 논문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해하게 만듭니다. 그는 악인이기 전에 인간이었고, 웃고 싶었지만 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2025년 지금,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웃음 뒤에 숨은 절망을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커’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세상이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그는 조커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